2019/05/29 10:07

한강 Letters from me

한강공원은 참 재미있는 공간이다. 지난 주와 달라진 거라곤 토요일이라서 주차요금 걱정을 해야한다는 것과 연이 날리는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지영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하는 날이라 단 둘이서만 왔다는 점. 자전거 동호회 무리들이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하려는 건지 아니면 없는 유대감을 만들기 위해 그러는지 몸에 달라붙는 똑같은 옷을 입고 앞으로 달릴 길에 대해 십 분이 넘게 토론하는 모습 뒤로 치킨 배달원들이 분주하게 메뉴판을 돌리고 다닌다. 같은 비비큐인데 저희는 양으로 승부합니다. 지난 번에 알게 된 체인점끼리도 경쟁하게 만드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대해 분개하면서 왜 이렇게 과자를 안 싸왔냐고 아빠를 나무라는 지영이에게 캬라멜 세 개를 한꺼번에 줬다. 아빠 팔을 베고 누운 지영이는 저 구름이 이 구름보다 빨리 움직인다며 간만에 제법 아이다운 말을 했다. 캬라멜은 과자를 대신하지 못한다. 과자를 왜 이렇게 안 싸왔냐며 캬라멜의 단 맛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빠를 또 나무란다. 과자 대신 캬라멜을 주는 것이고 게다가 캬라멜도 엄밀히 따지면 과자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미리 주지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너는 2008년 2월생이니만큼 내가 미리 주지해줬다 한들 과자를 또 찾았을텐데 결국 챙기지 못한 아빠의 불찰을 너그러이 용서해주고 다음에 엄마와 언니와 함께 올 때는 많이 싸 오자고 달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누방울 만든다며 뛰어 나간다. 몇 해 전인가는 인라인이 유행이었다. 나도 거기에 편승해 몇 번 라이딩도 했었다. 그게 벌써 칠팔 년 전이라는 기억이 살아나는 바람에, 뭐든 유행이 빠르고 진득하게 이어지는 법이 없는 한국 문화의 경박함을 탓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지영이는 비누방울 만드는 걸 관두고 봄에 몇 번 입었다가 아직 빨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새 옷 같은 내 청바지에 비누 뭍은 손을 쓱쓱 닦고는 땀을 훔치며 놀이터로 뛰어간다. 혼자서도 놀 수 있는 존재가 어린아이다. 얼마 전 TV에서 후크를 보고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 피터팬이 결국 어른들의 자화상이라는 계몽을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여기도 네버랜드처럼 아이들이 많다. 이곳에서는 모두 밝고 맑게 웃는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야 한다. 하지만 세상이 놀이터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무렵 나이 든 피터팬처럼 날지 못하게 되겠지. 한강 공원에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피터팬들이 유모차와 그늘막 텐트와 아이들의 장난감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고 있다. 모두 날지 못하는 피터팬이다. 덥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 지영이에게 추우니 그만 가자했더니 이마에 맺힌 땀을 보여준다. 지영이의 허락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란 기대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날지 못하는 피터팬은 날 수 있는 피터팬을 쉽게 속이는 법. 201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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