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5 20:50

보이지 않는 손 Letters from bits

피케티가 <21세기 자본론>을 들고 나와, 그저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는 줄로만 아는 대다수의 민초들에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증거로 어마무시한 자료를 들이댄 덕에 경제에 약간의 관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21세기 자본론>을 공들여 읽을 짬이 나지도 않고, 읽는다고 이해될 리도 없고 해서 꿩대신 달걀로 <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모든 것 - 마이클 굿윈 글, 댄 E. 버 그림>을 읽었다.

달걀인 줄 알았는데, 씨암탉이다.

내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1776)>은 '보이지 않는 손'이 전부였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바람직하게 돌아가게 한다는 그 유명한 내용 말이다. 그것만 보면 아담 스미스는 자유시장을 옹호했지만, 사실은 자유에 대한 책임을 더 세심하게 강조했다. 그러한 그의 좌파적 견해는 '보이지 않는 손'에 가려 소개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담 스미스를 시작으로 경제사를 꿰뚫는 와중에,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진단하는 데에도 과감히 아담 스미스를 데려온다.

"구성원 대다수(노동자)가 가난고 불행하다면 그 어떤 사회도 번창하거나 행복할 수 없다."

"자본가가 내놓는 새로운 법률이나 상업규제안을 항상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심사숙고하고 실험한 후에 자본가의 법률이나 상업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공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본가들에게 농락당하고 지배될 것이다."

"이윤은 가장 빨리 몰락하는 나라가 가장 높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모든 시대에 인류의 지배층이 따르는 저열한 격언이다."

"상인과 제조업자들의 비열한 약탈과 독점 정신은 그가 누구이건 간에 인류의 주인처럼 굴려고 한다."

"상인과 제조업자들은 임금이 높아지면 물건 값이 올라서 악영향이 나타난다고 불평한다. 저들은 높은 이윤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선 한 마디도 안 한다. 자기들의 이익이 끼치는 해악은 입을 닫는다. 오로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만 불평한다."

모두 <국부론>에 나오는 말이다. 

저자는, 밀튼 프리드만이 살려낸 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실패는, 시장이 가난한 자의 필요보다 부자의 변덕을 위해 작동한 데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일례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외부효과-생산에 따른 오염, 생산설비와 완제품의 안전성 확보 등-는 또 다른 비용을 요구하는데, 신자유주의 시장은 이러한 부정적 외부효과를 공공비용으로 떠넘긴다. 이 또한 아담 스미스가 강조했던 정부의 역할을 무시한 처사다. 저자는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는 데 시장에 나오기까지의 총 비용을 지불하고싶지 않다면, 사회자원을 잘못 사용한 것이다." -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모든 것 p.186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본의 소득이 노동 소득을 앞서는 현상을 사람들은 피케티가 공론화하기 전에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러한 자본의 불균등한 분배가 어느 시점에서 긍정적인 효과(소위 트리클다운, 낙수효과)를 언제까지나 기대할 뿐. 그러나 (있지도 않는) 낙수효과가 긍정적인지 또는 바람직한지에 대한 검토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 아닌가. 

"(부자들의) 멍청한 짓이나 부도덕조차 유행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흉내내고 따라하는 것조차 자랑스러워한다. 자신들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p.231

이미 빈부 격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져, 전 세계적으로 상위 1% 부유층이 자산의 48%를 소유하고 있고, 상위 8%는 85.3%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Global wealth report 2014 (by Credit Suisse Research)


우리 나라는 과세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얼마 전 자본소득의 일부인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이 공개돼 대략적인 정황을 알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위 1%가 배당소득의 72%와 이자소득의 45%를 가져간다.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시장 경제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불평등이 정도를 넘어 시정될 여력이 없고 점점 고착화 되어간다면 정부가 개입하고, 정부가 못 한다면 일반 대중이 개입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하위 90% 일반 대중은 10%의 자산을 사이 좋게 나누며 파란약을 삼키고 행복하게 사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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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무민 2014/10/16 11:29 # 답글

    저도 지금 읽고 있는 책이에요.
    만화라서 가볍게 생각했다가 충실한 내용에 감탄하고 있는 중.
    출퇴근길에 틈틈이 읽고 있는데 사실 자리잡고 앉아서 정독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드네요
  • leben 2014/10/18 17:18 #

    저도 덕분에 피케티도 읽어볼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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