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6 12:23

생채와 생강차 Letters from me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다. 이틀 전 토요일, JH 결혼식 때문에 K시에 갔다. 식이 끝나고 헤어지면서 YD가 한 마디 했다. 어머니 생신인데 혼자 내려왔어? 너도 참 어렵게 산다. 큰 아들만 데리고 온 YD도 고향 Y시에 들러 부모님과 저녁 먹기로 했단다. 고향 시골 두 노인의 건물은 변함없이 을씨년스러웠지만 다행히 내가 지난 추석 때 락스로 공들인 화장실은 아직까지 곰팡이가 내리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생채를 무치고 계셨다. 저녁을 나가서 먹자는 말에 두 노인은 손사레를 쳤다. 나가 먹어봐야 비싸기만 하고 맛도 없어. 사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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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아버지 혼자 아니면 두 내외가 먹어오던 식탁 좁은 공간에 내가 끼어들었다. 조기매운탕. 예전부터 아버지는 조기를 좋아하셨다. 방금 무친 매콤한 생채. 아버지는 너무 매워 이가 아프다며 짐짓 눈에 보이는 엄살을 부리신다. 어머니는 습관처럼 나중에 드신다며 함께 앉지 않으셨다. 저녁을 먹고 부정선거다 아니다 논쟁을 벌였다. 논쟁 사이 사이 고향 소식도 전해주셨다. 동네에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오기로 했던 작년부터 아버지는 발벗고 폐기물처리장 설립 반대운동 위원장을 맡아 서명을 받고 국회에 탄원을 하느라 분주히 지내셨다. 폐기물 사업체로부터 뇌물을 먹은 공무원들을 '혼구녕'낸 이야기를 하실 때는 10년 젊어지셨다. 
  
밤이 깊어지자 아버지는 내일 올라갈 때 이거 가져가라 저거 가져가라 하며 이것 저것 꺼내셨다. 나는 다 있고 게다가 많이 있다고 손사레를 치며 거절했다. 포도와 밤이 아주 좋으니 가져가서 먹든지 나눠주든지 하라셨다. 어머니는 생채가 맛있게 됐다고 조금만 가져가라 하셨다. 겨울에 애들 목 감기에 좋으라고 생강차도 재뒀으니 그것도 가져가라 하셨다. 나는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않음으로써 가져가겠다는 뜻을 내비치고야 말았다.
  
일요일 아침, 짐을 다 챙기고, 아침 일찍 교회를 가셔야만 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태워주기만 하는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우두커니 집을 바라봤다. 일요일 아침 시골의 고요함에 어울리는 집같지 않은 집. 곳곳에 금이 가고, 온갖 잡동사니가 모여든 창고와 책을 모아둔 서고에는 먼지와 쥐가 들썩였다. 새로 입양온 진돗개는 가까이 가면 꼬리를 말고 으르렁거렸고, 지난 추석 때 마당을 가득 채웠던 사람 키보다 더 컸던 엉겅퀴 덩이는 밑동만 남기고 사라졌다. 여기 어디서 내가 눈싸움을 하고, 가재와 미꾸라지를 잡고, 박하풀을 구겨 코에 집어 넣고, 개구리 잠자리 메뚜기 사냥을 하고, 사랑하던 세퍼트와 뒹굴며, 누나와 형과 싸움을 하고 사촌 동생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던 곳인가. 마당엔 온갖 꽃들과 작은 나무가 가득 자라고 있었고, 때때로 기르던 고양이가 쥐를 다루며 놀고는 했다. 방학 숙제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은 마당을 벗어날 필요가 없었다. 가을마다 리어카에 밤을 한가득 실은 채 마당 아래 언덕에서 삼촌이 부르면, 숙제하다말고 뛰어 나가 리어카를 밀었고 가끔 굴러 떨어지는 밤송이에 얻어맞곤 했다. 계절마다 풍성하진 않지만 제철 과일을 먹을 수 있었고, 샘물에 담가 두면 냉장고 없이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었다.
  
발전. 개발. 전기가 들어오면서 집은 밝아졌고, 물은 샘에서 길어오지 않아도 펌프가 퍼날라 줬다. 매일같이 언덕 아래 샘물에서 물을 기르던 어머니는 세상 좋아졌다 하셨다. 동시에, 옛 기와집은 허물어지고 양철지붕이 들어섰다. 밤농사는 지을 사람이 없어졌고, 저마다 돈 된다는 포도가 벼를 대신해 논에 들어섰다. 옛 화단 자리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멘트의 흔적들만 남았다. 나는 도시의 무엇이 좋아 이곳을 벗어나리라 어릴 적부터 다짐했던가. 바라볼수록 안타깝고, 아쉽고, 아린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나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내 마음의 끈도 가늘어져 갔다. 우리 삼남매와 막내 숙부가 쓰던 교과서와 방학숙제, 일기를 왜 밖에 쌓아둬서 세째 숙부가 없애도록 했는지, 옛 추억을 관리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무 것도 모르고 모두의 추억을 불태워버린 세째 숙부에 대한 원망도 멀어져갔다. 그까짓 초등학생 일기, 뭐 볼 게 있을까 하다가도 일 학년 여름 방학 때 크레용으로 그리던 그림일기의 첫 장이 아버지의 얼굴이었지, 선생님은 어린 애가 그린 게 아니라고 상을 주지 않았고, 어머니는 아쉽지만 어쩌겠냐 하셨지, 하고 혼자 자랑아닌 자랑을 했다.
 
내 차가 아닌 내 차를 타고 두 시간 넘게 달려 내 집이 아닌 내 집에 도착했다. 포도와 밤은 일단 트렁크에 놔두고 생채와 생강차만 가지고 들어갔다. 또 뭘 가져왔어. 얼굴부터 찡그린다. 나는 애써 태연하게 포도와 밤도 있다고 했다. 어휴, 내가 가져오지 말라고 말한다는 걸 깜빡했더니, 나도 버리기 싫단 말야. 엄마 아빠도 일 주일이나 안 계셔서 먹을 사람도 없단 말야. 계속 신경질이다. 나는 아무 댓구 없이 포도와 밤을 처가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오늘 아침, 시은이와 함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시은이는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한 마디 하더니 네, 네, 네만 한다. 당부와 부탁이 많으신가. 지영이 목소리도 듣고 싶다신다. 지영이는 아직 자고 있어요, 했다.
  
집을 나서는 현관 문 앞에 놓인 종이 가방엔 생강차가 들어있었다. 나는 찢어질 듯한 종이 가방을 조심스레 들고 조용히 현관 문을 닫은 뒤 집을 나섰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건 생강차 뿐만이 아닌가보다, 그래도 시은이 좋아하는 생채는 살아남았군, 중얼거렸다.

2014.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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