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06 12:18

D-War, The War Letters from bits

개티즌들이 얼마나 생각 없이 사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디 워>다. 김규항이 한겨레21에 기고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생산적인 논쟁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글 몇 개 스크랩 해본다. 아무리 봐도 이번엔 김규항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난 군중은 우매하다고 오래 전부터 '믿어'왔다. 계몽이 가능하다고 누가 말했나? 혼자 떨어지면 순하고 착한 사람도 뭉쳐 두면 개지랄하는 짐승으로 돌변한다.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말은 순하게 해도 익명의 가면 뒤에선 개티즌의 본심이 나온다. 전쟁을 좋아하는 인간은, 역시 역겨운 존재다.



타인의 취향 - 김규항 2007.08.25 Sat

<디워>를 둘러싼 소동을 보며 몇 해 전 한 선배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아이가 신화를 너무 좋아해서 고민이야." "신화 좋아하는 게 왜..." "아, 가수 신화 말이야." "아, 예." "중학교에 가더니 안 좋은 집 아이들과 어울려서인지 취향이 저속해졌어." "글쎄요, 전 음악은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지만 대중음악이 고전음악보다 저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대중음악 중에도 바흐나 모차르트에 필적하는 음악이 있죠. 신화가 그런 음악은 아니지만..." "그렇게 잘났으면 당신이 우리 애 데려다 키우지 그래!"


<디워> 문제가 간단치 않은 건 비슷하게 언급되는 다른 사건들(이를테면 황우석 사건)과는 달리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엔 맞다 틀리다, 혹은 옳다 그르다라는 게 없다. 취향이 있을 뿐이다. 예술이란 나에겐 천상의 아름다움인 게 다른 사람에겐 하품만 나오는 것일 수도, 나에겐 쓰레기인 게 어떤 사람에겐 삶의 위로일 수 있는 것이다. 만명에겐 만개의 취향이 있다. 천박한 취향은 고전음악을 듣는 사람도 대중음악을 듣는 사람도 아닌, 고전음악을 들으며 대중음악을 듣는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있다.


어떤 사람들 말마따나 <디워>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디워>가 특별하게 경멸당할 이유는 아니다. 알다시피 오늘 생산되는 상업 영화의 9할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영화다. 사실 <디워> 사태의 시작은 <디워>를 넘어 <용가리>도 나오기 전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 그리고 인텔리들끼리 읽는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평론도 있어야겠지만 대부분의 평론이 그렇게 된 건 적이 식민지적 풍경이었다.(본토의 록음악 평론가는 좋아하는 뮤지션이 레드 제플린이라고 말해도 식민지의 평론가들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뮤지션을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


대중들은 잘난 그들에게 반감을 갖게 되었고 그 반감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는데(전문가들이 호평하는 영화는 부러 피하는) 결국 <디워>에서 폭발한 것이다. 심형래 씨는 영리하게도 대중들의 그런 반감을 장사에 이용한다. 훌륭한 행동은 아니지만 오늘 한국사회가 그런 행동을 집어내어 준엄하게 질책할 만큼 품위 있는 사회는 아니다. '애국주의 마케팅'이라는 것도 한심스럽긴 하지만 한국에선 이미 특별한 게 아니다. 월드컵 때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던 태극기를 잊었는가? 싸잡아 말할 순 없지만 네티즌의 집단주의적 행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별할 게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특별할 게 없는데 매우 특별하게 여겨지는 배경에 인텔리들의 취향에 대한 경멸(이 ‘꼴 같지 않은’ 영화에 대한 경멸, 그리고 그런 걸 영화라고 열광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이 있다는 것이다. <디워>를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이지 않은가, 라는 반문은 맥락을 잃은 이야기다. 그들은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인 게 아니라 제 취향을 경멸하는 재수 없는 인간들에 반발하는 것이다. 동네 양아치들이 싸우다 파출소에 잡혀가도 ‘선빵'을 가리는법이다.


내 주변만 해도 <디워>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예의 보지도 않고 비웃는 사람부터 이런저런 이론을 들먹이며 조소하는 사람까지. 그 가운데 <디워>라는 영화에 대해 말할 분명한 자격을 가진 사람은 둘, 내 딸과 아들이다. 둘은 <디워>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중학 1학년인 딸의 평은 이렇다. "스토리나 구성은 괜찮은데 CG는 좀 엉성해." 전문가들의 평, 심지어 심형래 씨의 의견과도 많이 달라서 좀 당혹스럽긴 하지만 내가 그의 평에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하나였다. "아, 그래."


타인의 취향은 전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쓰레기라 해도? 그렇다, 쓰레기라 해도. 덧붙이면, 쓰레기라 해도? 라는 말은 쓰레기로 보여도? 로 바꾸는 게 좋다.(한겨레21, 일러스트 김대중)

 

---------------------------------------------
팩트도 확인 안하고 글쓰는 김규항과 뉴욕펑크
By 한윤형 : 2007/09/03 05:29
김규항, 디 워, 진중권

관련 글 리스트
김규항, 타인의 취향 : http://gyuhang.net/archives/2007/08/25@01:43PM.html
김규항, 평론가 : http://gyuhang.net/archives/2007/08/29@04:44PM.html
김규항, 콧노래 부르며 : http://gyuhang.net/archives/2007/09/01@04:27PM.html
뉴욕펑크, 진중권 파시즘 진중권 상업주의 : http://blog.naver.com/nypunk/20041088353
뉴욕펑크, 김규항 논란과 '살롱좌파 지망생 : http://blog.naver.com/nypunk/20041226535


*링크는 해두었지만 정신건강상 읽지 마시라는 권고를 드립니다. 특히 뉴욕펑크의 두 번째 글은 쓸데없이 길군요. 저 혼자 욕봤으면 됐습니다.


간단한 상황 설명. 며칠 전에 나는 김규항이 <한겨레 21>에 쓴 “타인의 취향”을 오프라인의 기준으로 보면 꽤 과격하게, 온라인을 척도로 하면 평균적인 레벨로 비판/비난했다. 상대방을 그토록 격렬히 씹었다면 그 사람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예의’였기 때문에 나는 그 글을 김규항 블로그에 트랙백으로 보냈다. 얼마 후 이미 “타인의 취향”에 우호적인 트랙백을 보낸 바 있는 뉴욕펑크라는 분이 내 글을 대표적으로 지적하는 반론을 김규항의 글에 다시 트랙백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내 글에 트랙백을 보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규항넷을 그리 열심히 뒤지는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던 거다. 그런데 혹시나 내가 뉴욕펑크 글을 보지 못했을까 우려해서인지 얼마 후 김규항이 짧은 포스트를 통해 그의 글을 언급하고 나섰다. 상황이 웃기게 되어버렸다. 아마 뉴욕펑크의 ‘예의’ 감각은 나와 다른 모양이고, 나에게 자신의 글을 읽히기 싫었던 뉴욕펑크의 ‘타인의 취향’을 배려할 정도로 김규항은 사려깊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두 사람은 나와 사태를 인식하는 방법 자체가 다르고 그 방법은 분명히 ‘틀렸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김규항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의견을 교환하는 데 있어 대전제는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먹는 것, 이다. 그 다음에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는 법인데 어떤이 말마따나 그런 사람이 참 가뭄에 콩나듯 하다. 갈수록,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모든 걸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차고 넘친다. 세상은 안개에 갇히고 체제는 콧노래 부르며 힘을 더해 간다.
(힌트 하나. 타인의 취향은 폭주족을 위한 변명과 비슷한 글이다.)“


내가 자기 말을 못 알아먹었다는 거다. 그래서 당장 “폭주족을 위한 변명”을 클릭해 보았다. 좋은 글이다. 옛날에 한번 본 기억도 있고. 그는 한국의 폭주족이 저지르는 범법행위라는 것은 중산층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범법행위와 별 차이도 없는데, 그들에 대한 사회적 적의가 과장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적의의 존재는 노동계급에 대한 중산층의 경멸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화비평은 훌륭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말 궁금한 것은 삐삐밴드가 TV 카메라에 침을 뱉는 일을 저항이라고 우기는(당사자는 극구 아니라고 하는데도) 진보적 지식인들이 폭주족의 저항과 예술에 대해선 침묵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서양 대중문화사라는 메뉴판에 나와 있지 않은 음식은 절대로 먹지 않는 그들의 격조 있는 식성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스피드를 모르기 때문일까.”


평론가들에 대한 이런 지적도 적절하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말마따나 <디 워> 사건을 이 폭주족 논란과 비슷한 범주의 것으로 파악한다는 거다.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문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으니 편의상 “평론가들의 민중에 대한 경멸”이라는 카테고리를 붙이자. 딱히 다른 방법은 없고, 김규항도 더 복잡한 생각을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일단 논리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그 가치판단의 계급성을 봐도 두 개의 사안이 비교대상인 것 같지는 않다. <디 워> 팬들을 비판한 진중권은, 한국 중산층의 노동계급에 대한 경멸을 후원자로 지니고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는 쪽이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쪽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을 테다. 중산층의 일부는 <디 워>빠로서 진중권을 공격했고, 중산층의 일부는 <디 워>빠의 난동과 진중권의 온라인 대응을 이른바 ‘어른’의 눈으로 똑같이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으며, 중산층의 대변자이며 권력관계에 민감한 주류언론들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 양자 중 어느 쪽도 편들지 않으며 “진중권 막말파문”에 대한 선정적인 기사나 뽑으면서 기사의 조회수나 올렸다. 덧붙여 조선일보처럼 특별히 진중권을 미워하거나 <디 워> 팬같은 거대 집단의 지지를 필요로 했던 정치적인 언론들은 진중권을 386으로, <디 워> 팬들을 포스트 386으로 계열화하면서 ‘포스트 386’의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이것이 ‘객관적인’ 상황 설명이다. 여기에 반대하려면 다른 자료를 제시하기 바란다. 그런데 일부 <디 워> 팬들의 난동에 대한 건전한 시민적인 분노가 어찌하여 ‘노동계급에 대한 중산층의 경멸을 등에 업은’ ‘평론가들의 민중에 대한 부당한 경멸 행위’가 되는 걸까?


그 이유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정말로 고맙겠다. 설명 안 할 거면 몇 줄 안 되는 걸로 “사실 이거랑 이거랑 비슷한 글이다. 이해 못하는 놈들은 즐-” 따위의 어설픈 정치행위도 하지 말도록 하자. 


뉴욕펑크는 김규항과 달리 글을 길게 썼지만, 그래봤자 전혀 정리가 안 되고 있다. 그의 글에는 1) 팩트에 대한 문제제기와 2) 정치적인 견해차이, 그리고 기타 한 두가지 것들이 혼합되어 있다. 1)에 대해서는 내가 옳고, 2)에 대해서는 토론을 해봐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 싸워본 적이 없거나, 멍청한 것일 텐데, 이런 것들을 내가 하나하나 가르칠 수는 없으니까 그저 팩트에 대해서만 얘기하도록 하자. 상대방과 논쟁할 거리가 워낙 많을 경우엔 사실 이게 편한 방법이다.


그는 “진중권 파시즘,진중권 상업주의”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최근의 이른바  `디워 사태`에서 대중의 광기만큼이나 위험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진중권 파시즘이다.오히려 늘상 있어왔던 대중의 광기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했던 (일부는 분명 진중권 파시즘을 인식하고 경계해왔다) 진중권 파시즘을 제대로 확인했다는 소득이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진중권은 대중을 도발하여 대중의 광기를 유도해낸 다음 이른바 핍박(?)받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스스로를 마켓팅해왔다.진중권의 도발에 넘어간 대중도 잘못이지만 그런 식으로 `먹물밥` 먹고사는 진중권도 딱하기는 매한가지다.말하자면 진중권과 대중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그러한 진중권을 `장삿속으로` 섭외한 MBC 백분토론의 고질적인 선정주의,상업주의를 지적하는 것 또한 이젠 지겹다.)“


또한 그는 내 글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 `김규항 논란`과 살롱좌파 지망생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디워 사태의 전후사정을 따지는데 있어 고작 디시 디워갤의 글을 붙여준다?그런데 그 글은 누가 작성했으며 과연 얼마나 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으며 그 글의 불편부당함의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는가?그 글이 디워 사태의 모든 진실을 담고있다는 어떤 공신력이라도 획득했는가?김규항의 "평론가들의 대중의 취향에 대한 경멸이 사태의 발단"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는데 있어 고작 "디시 디워갤의 글 하나 붙여줄까?" 운운한다.이게 반박의 전부다.당최 이것은 김규항의 주장에 대한 반박인가,(감정적) 반발인가?”


평론가로부터 핍박받는 부당한 민중을 수호하려는 뉴욕펑크의 글에서 ‘고작 디시 디워갤’이라는 표현이 나오다니. 여기서 나는 뉴욕펑크의 인터넷 유저에 대한 경멸감을 확인해도 되는 걸까? 뉴욕펑크는 그게 아니라 그들이 단지 ‘불편부당’한 가치평가의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뉴욕펑크가 생각하는 불편부당한 가치평가의 주체는 뭐지? 평론가는 당연히 아닐테고. ‘디시 디워갤’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에 있는 민중도 안 되는데. 그럼 뭐가 남지? 아, 자신이 존중하는 추상적인 ‘민중’? 그 치들은 무조건 나와 같은 말을 했다고 우길 수 있으니까? 지금 뭘 어쩌자는 걸까?


나는 ‘디시 디워갤’의 ‘디워 사건일지’가 불편부당한 텍스트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불편부당을 논하기 전에 그저 팩트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 팩트가 틀리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아는 다른 팩트를 가져와 지적해주길 바란다. 그게 토론이며, 이성과 이성이 만나는 방식이다. 이전 글에서 디워 사건일지를 붙여주지 않았던 건, 내가 그 팩트는 논할 가치도 없이 명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김규항과 뉴욕펑크는 그러한 내 상식에 어긋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다시 ‘디워 사건일지’를 찾아서 동봉한다.


“마치 일본애들이 과거사 발뺌하듯 디워 사태도 본질은 묻혀지고 그저 취향 차이로 인한 대중과 지식인의 대립이라는 식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혹시라도 정권이 바뀌면 조선일보는 포스트386세대의 봉기는 디워사태로부터 시작되어 정권교체를 이루었다고 할지도...

-----------------

1. 7월21일, 씨네21 김도훈 기자 블로그 폭격

2. 7월 26일, 디워 비판한 이동진 기자 게시판과 그가 출연한 라디오 프로 게시판 털림

3. 씨네21 김도훈 블로그 악플러 쇄도 연이어 남동철 편집장 털림....
   김도훈 블로그에는 망치 들고 회사 앞에서 기다린다고까지 올라옴

4. 심형래에 대해 애정이 듬뿍 담긴 평을 쓴 익스트림무비,
   단지 "B급 괴수 영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해서 해당 포스트 털림

5. 디워를 “B급 아동영화”라고 평한 김세윤 영화평론가가 일하는 직장 홈피 게시판
   (작가로 일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 게시판) 털림, 연이어 필름2.0 게시판 완전 캐털림

6. 7월 30일 디워 단평한 허지웅 기자의 블로그 털림.

7. 7월30일 잠자는 봉준호 공격..

8. 디워 광풍 비판한 허지웅 기자 블로그에서 이글루스 최다 리플 신기록 세우는 쾌거.

9. 허지웅 기자 개인 신상정보가 유출되어 욕설 전화에 시달리는 등
   디빠들의 행패 오프라인까지 확대..

10. 심형래를 비판한 많은 블로그들 디빠들의 악플에 시달리면서 이글루스, 티스토리 등의
   블로거들 사이에 심형래 비판하면 블로그 문 닫는다는 괴담 떠돔.

11. 이런 현상을 보다 못한 이송희일 "막가파식으로 디워를 옹호하는" 디빠들을 비판하자
     홈피 털리고, 디빠들 사회적 소수자(동성애자)에 대한 악질적인 편견까지 악플 테러에 이용

12. 꼭지 돈 진중권 100분 토론 출연, 일본인 부인과 아들에 대한 욕설과 비난은 물론
     신상정보 유출로 욕설전화에 시달림.

13. 진중권이 일하는 중대 게시판 털리고..
     애꿎은 중대는 빗발치는 항의전화로 업무 마비됨

14. 기타 디빠들에게 털려서 악플 도배된 일반인 개인 블로그는 셀 수 없이 많음
--------------------

추가할 거 있으면 계속해서 보완 바람... “


그리고 비슷한 상황을 기술한 노바리님의 요약도 인용한다.
 

“게다가 사실 관계를 정확히 밝히자면, 불과 경력 2년 여의 영화기자가 역시 심형래에 대한  팬심을 바탕에 깔고 썼던 개인 블로그의 리뷰와, 심지어 애정과 아쉬움을 가득 담은 심형래의 오랜 팬인 어느 웹진의 리뷰어가 쓴 리뷰에조차 제목만 읽고 개난장질을 펼친 '선빵'을 시도한 게 바로 그 불특정 네티즌들, 즉 대중이며, 이 시기는 대충 기자시사회가 있었던 <디워> 개봉일 2주 전 월요일 저녁 즈음을 전후로 한다. 이후 개봉 때까지 인터넷에는 "디워 씹으면 블로그 닫는다"란 말이 돌았다. 저 개난장질의 1차 피해자에는 기자와 리뷰어뿐 아니라 일반 네티즌까지 포함돼 있었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도 김영진 말대로 아예 <디워>에 대해 언급조차 안 한 채 '개무시'로 일관하고 있었고 언론 기자들은 마치 짜고친 고스톱인 듯 'cg는 훌륭하나 스토리가 좀...' 정도의 하나같이 조심스러운 평들을 썼으며, 영화잡지들은 그저 별점과 그에 따르는 20자평 정도나 싣고 있었을 뿐이다. 이동진 정도만이 꽤 쎈 비판을 날렸는데, 이동진이 <용가리>가 개봉할 무렵 지금 <디워>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내세웠던 바로 그 논리로 <용가리>를 적극 옹호하고 지지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완전히 잊혀진지 오래다. (...나는 선빵 중의 선방을 날린 이들의 진짜 정체가 '디워를 열광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들로 위장한 "대기업에 고용된 일종의 작전세력 + <디워>에 투자한 개미투자자들"이 아닐까, 란 의심을 살짝 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이는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뉴욕펑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체적으로 사태의 전후사정을 따지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대중이,혹은 `디빠`가 가만히 있는 평론가한테 느닷없이 가서 욕설을 퍼부었을까?먼저 평론이 있었으니 그에 대한 반발이 있었을 것 아닌가?그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평론가가 먼저 대중의 취향을 경멸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 잘못이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다.김규항은 바로 이 말을 하고 있다.”

그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까, 영화 개봉하기 전에 이루어진 그 ‘선빵’이 하도 이해가 안 가서 거대 영화자본 쇼박스의 작전세력이 아닐까 의심까지 간다는 게 노바리님의 지적이다. 이제 이해가 되는가? 여기서 뉴욕펑크의 상황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진중권은 뉴욕펑크의 주장대로 일부러 대중의 매를 벌어 자신을 진보적 지식인으로 위치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평론가에 대한 대중의 무한한 경멸을 자기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탁월한 정치적 기동을 한 거다. 그 기동의 영리함은 두고 두고 칭찬받아야 할 것 같다. 사태에 관심이 없는 많은 이들이 뉴욕펑크의 생각처럼 ‘진중권 이후’만 보고 진중권을 매명의식이 충만한 지식인으로 파악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리고 자칭 ‘B급좌파’ 김규항의 포지셔닝은 얼마나 헛다리를 짚었는지도 알 수 있다. 거대 자본이 손실을 회수하기 위해 일으켰다는 의심이 농후한 논쟁을 “무지한 민중에 대한, 실은 더 무지한 평론가들의 경멸”이라는 틀로 설명하려 들다니. 김규항이 "타인의 취향"을 쓸 때, 쇼박스는 "콧노래 부르며 힘을 더 해 간다." 두 사람 모두 이 사안에 개입하기엔 게으르다. 자료조사는커녕 서핑도 안 했다. 서핑도 안하고 상식 운운해서야 쓰겠는가? <디 워>는 진중권보다 더 열심히 봤을까? 그랬을 것 같지도 않다. 평론을 위해 두 번이나 꼼꼼히 봤다는 진중권과, 두 자식의 반응을 체크하며 영화를 보았던 김규항. 누가 더 영화를 열심히 봤겠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 명명백백한 팩트에 대한 반론이 불가능하다고 미리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엉터리라고 말하려면 다른 팩트를 가져오라는 것일 뿐이다. ‘선빵’이라는 용어에 합당하려면 적어도 <디 워>가 개봉하기 전에 평론가들이 특별히 이 영화만 심하게 비판했다든지, 아니면 일부 평론가들이 <디 워> 옹호 네티즌들의 블로그에 찾아가 악플을 달았다든지 등등의 정황을 제시하란 말이다.


만일 그게 아니라, “지금껏 대중이 좋아한 영화를 비판한 평론가들의 행태”가 ‘선빵’이라고 우긴다면, 세상에 정당화되지 않을 사이버테러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이버테러에서 ‘타인의 취향’을 발견해야 할 테다. 뉴욕펑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규항은 `디워`가 훌륭한 영화가 아니며 심형래의 행태가 바람직한 것도 아니며 대중의 광기는 (당연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후사정을 따졌을 때 이른바 `대중의 광기`는 자신들의 취향을 경멸하는 (잘난?) 평론가들에 대한 반발이 수위를 넘은 것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어리둥절해진다. 정말 그런가? 김규항은 이렇게 말했다.


“<디워>를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이지 않은가, 라는 반문은 맥락을 잃은 이야기다. 그들은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인 게 아니라 제 취향을 경멸하는 재수 없는 인간들에 반발하는 것이다. 동네 양아치들이 싸우다 파출소에 잡혀가도 ‘선빵'을 가리는법이다.”


전체적인 글이 애매하긴 하지만 이 구절을 보자면 김규항은 (가령 진중권에 비해) 대중은 별로 잘못한 게 없다고 보고 있다. ‘제 취향을 경멸하는 재수없는 인간들에 반발하는 것’ 뿐이니까. 역시나 내 생각처럼 김규항은 모든 사이버테러에서 타인의 취향을 발견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가령 부산대 모 페미니즘 웹진에 쏟아진 예비역들의 테러는 ‘예비역들을 경멸하는 재수없는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것’ 뿐일테고. 이특이 거짓말한 게 아니었다면 김연아 싸이에 몰려간 슈주팬들은 김연아의 '선빵'에 반응한 것이었을 테고. 이런 식으로 따지면, 말이야 만들면 그만이다.


“폭주족을 위한 변명”에서 김규항은 훌륭한 평론가였다. 그는 계급의 잣대로,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다른 평론가들이 하지 못했던 작업을 보완하고 있다. 그때 그가 했던 것이 바로 ‘평론’이다. “평론가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다.”라고 그 자신이 말했던 그 평론가. 평론가에 대한 그의 단언은 매우 특수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논란에 자신의 옛글을 끄집어내면서, 그의 주장은 일거에 ‘평론무용론’으로 전락한다. “폭주족을 위한 변명”은 그 잣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떤 악의적인 김규항 따라쟁이에게 그 글은 ‘폭주족에 대한 민중의 정당한 경멸을 조소하는, ‘생산에 기생하는’ 좌파 먹물의 배설물‘일 수가 있다. 그리고 폭주족들은 중산층들의 잠을 깨우면서 ’선빵‘을 날린 것이고. 이래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까?

 

By tango 2007/09/06 02:33
선빵의 사실관계, 그리고 <디워>의 마케팅에 대해서 한 말씀...


들어가기에 앞서 밝히자면, 저는 영화 언저리에서 서식하는 사람입니다. 업계의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10년차 이상의 짬밥을 먹은 영화계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업계 동향에 대해 딱 그만큼의 통빡을 지닌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평범한 10년차 영화인'이라는 얘깁니다^^;;블로깅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아직 둥지가 없는 눈팅족이기도 합니다. 한윤형님의 블로그에 좀 길다 싶은 댓글을 달고자 하는 것은, 둥지 없는 눈팅족 주제에 좀 심하게 입이 근지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윤형님 말마따나, 논쟁을 해도 좀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고들 했으면 싶어서 노가다 좀 했습니다.


쇼박스가 <디워>를 라인업에 올린 것은 2006년 2월 언저리입니다. 관련 소식을 전한 프레시안무비 오동진 기자의 기사가 2월 25일자이니 2월 말 경이군요.

영화계에서 투자 좀 한다는 투자사들 치고 심형래 감독과 미팅 한 번 안 해본 투자사는 아마 없을 겁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심 감독의 요청을 거절해왔지만, 어쨌거나 심감독의 뚝심으로 영화는 완성단계에 있었고 투자배급사들은 다시 한 번 심 감독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막판 투자와 배급 때문이었죠. 전화를 피하는 투자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쇼박스는 심 감독을 만나주었습니다. 물론, 똑똑한 쇼박스는 이때쯤 이미 주판알 다 튕기고 전화 받은 겁니다. 쇼박스는 무서운 회사입니다. 쇼박스가 당시로서는 누구나 꺼려하던 이 골치 아픈 작품을, 말 많고 다루기 힘든 심형래 감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래도 남는 장사라는 명확한 판단이 이미 섰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영화산업이 극장체인을 소유한 메이져 주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후발주자였던 쇼박스는 언제나 과감한 승부수를 통해 점유율 1위에 올라선 회사입니다(CJ와 쇼박스는 매년 자신들이 산출한 점유율 자료를 공개하면서 자기들이 1등이라고 주장합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원래 압도적 1위여야 마땅한 CJ가 사실은 늘 밀리는 듯이 보이는 게 실상입니다. 쇼박스는 1000만 영화가 벌써 두 편이잖아요?^^). 후발주자 쇼박스는 어떻게 업계 1위로 올라섰는가? 이를테면,

영화관람료 인상에 대해 영화인들은 언제나 몸을 사렸지만(오르면 좋지만 관객 반발이 무서워서 영화인들 스스로 영화관람료 올리자는 소리 잘 못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쇼박스는 걍 해치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영화사들과도, 동종 극장업계와도, 문화관광부와도 한 마디 상의 없이 '주말 관람료 8,000원'을 시행해 버렸고, 몇 달 안 가서 CJ와 시네마서비스도 따라했고, 문광부도 그럭저럭 넘어가 주었습니다. 저질러 버림으로써 업계 표준을 재정립하는 과감한 승부수. 이것이 쇼박스의 스타일이라는 걸 보여준 최초의 사례입니다.

두 번 째 사례는 '유료시사회'입니다. 시사회인데 유료라는 이 얄궂은 시도는, 영화계의 '주말개봉' 관행을 완전히 깨뜨려버립니다. <친구>가 대박 터지던 2001년까지 영화계에서는 '주말 개봉'이 관행이었고, 여러 개봉관 중 메인 상영관은 늘 '서울극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영화계의 눈길은 일제히 서울극장 앞으로 향합니다. 경쟁자인 동시에 나름 끈끈한 동업자들이기도 한 충무로 사람들은 그래서 토요일 마다 서울극장 앞으로 모이곤 했습니다. 어떤 영화가 대박이 터지면 자기 일 아니더라도 쥔장으로부터 밥 얻어먹을 수 있으니 좋고(저도 진짜로 '1만 원 권'이 든 '만원사례'봉투를 <친구> 개봉 날 받았더랬습니다^^), 망하는 꼴 보면 빈말이라도 위로 한 마디 던지고 가는 장소가 바로 서울극장 앞 커피숍이었습니다. CGV로부터 시작된 멀티플렉스가 서서히 힘을 발휘하면서 이런 풍경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 '주말개봉' 관행이 와해되기 시작하고 금요일 저녁 개봉 같은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주말 박스오피스에 금요일 저녁 개봉분 정도라도 더 얹으면 세 과시가 되니까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금요일 저녁, 금요일 오후 개봉이 추진되었습니다. 토요일 오전 서울극장 개봉이 지닌 의미는 당연히 흐려지죠. 전날 저녁 CGV 강변에 얼마나 관객이 들었는지 다 아는 처지에 토요일 오전 서울극장에 나가볼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 때 쇼박스가 한 건 합니다. '유료시사회'라는 명목을 붙여서, 목요일 개봉을 추진해버린 거죠. 금요일 저녁만 해도 어떻게 주말로 봐줄 만 한데,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 벙찐 CJ와 시네마서비스는 어떻게 했는가? 조용히 쇼박스를 따라합니다^^. 그 후로 슬슬 수요일 저녁 ‘유료시사회’도 열고 뭐 그럽니다.

세 번 째는 '대대적인 스크린 독과점과 과다한 마케팅비 지출'로 대표되는 '본격적 블록버스터 마케팅'의 시대를 연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쇼박스에만 손가락질 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걍 '선빵을 가리는' 중입니다^^;;;. 최초의 '1천만 관객 영화'인 <실미도>가 개봉당시 325개관을 확보했고 그것만으로도 논란이 일고 있을 때, 쇼박스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개봉하면서 440개 개봉관을 확보, '400개관 개봉' 시대를 엽니다. 2년 후, <괴물>을 배급할 때는 '600개 관 개봉'을 밀어부칩니다. 그래서 CJ나 시네마 서비스가 낫다고 말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투자배급사가 극장까지 독점하고 있는 이 막돼먹은 한국영화 시장에서 더 나은 놈이 누가 있겠습니까? 똑같은 게임의 법칙 속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은 불과 몇 년 만에 한국영화 시장을 승자독식의 진흙탕시장으로 만들어 놓은 똑 같은 놈들이죠. 다만, 저는 지금 '차마 아서야 할 짓'을 쇼박스가 늘 앞장서서 해왔다는 얘길 하고 있는 겁니다.

극장체인을 쇼유한 메이져 배급사라는 건 정말 악질적인 괴물입니다. 이 괴물은 영화를 완전한 소모성 진열상품으로 전락시킵니다. 일 년에 30편 이상 신작에 투자하는 투자배급사가 극장체인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투자하는 작품 하나하나의 흥행성적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영화를 걸면 극장이 매출의 50%를 가져갑니다. 매점 운영 등을 통한 부가수익도 있죠. 최근엔 극장 매출에서 매점 매출이 영화 티켓 매출을 상회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극장체인을 소유한 투자배급사는 그 영화가 일단 완성되어 극장에 걸리기만 하면 상당한 액수의 투자분을 쉽게 회수 할 수 있겠다는 통빡이 나옵니다.

정작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가 수익을 분배 받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투자배급사가 한 작품에 투자를 결정하는 순간, 1.5%에서 2%의 관리수수료를 총제작비에서 공제받습니다. 배급을 하면 수수료 20%를 뗍니다. 이것들은 모두 '최우선적'으로 공제되는 항목입니다. 영화 제작 총 기간에 해당하는 기간만큼 계산해서 금융비용도 제합니다. 사채업자들의 행태라고 볼 수 있죠. 평소 저는 관리수수료와 금융비용 공제관행이야말로 영화투자가 진정한 '투자'가 아닌 '마이킹'에 해당한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요즘 영화개봉 시 과다한 마케팅비 지출이 자주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순제작비 30억짜리 영화에 마케팅비가 보통 15억. 영화가 잘 되거나 사전에 뻥튀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20억도 아깝지 않게 씁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영화를 걸어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위에 열거한 항목들을 '선 공제'한 후에는, 순제작비 보다 먼저 회수하는 항목이 바로 마케팅비이기 때문입니다. 마케팅비는 명목상으로는 투자자와 제작자가 상호 합의해서 규모와 지출내역을 정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사실상 배급사가 전적으로 계획하고 운용하는 것이 통상관례입니다. 투자배급사는 분위기를 띄워야할 필요성이 있거나 반응이 좀 온다 싶으면 아까운 줄 모르고 마케팅비를 지릅니다. 과다하게 지출된 마케팅비가 매출에서 공제되는 만큼, 순제작비 회수는 그 만큼 뒤로 밀리게 되고, 영화가 정말 장사가 잘돼서 위의 여러 항목에 대한 공제가 끝나고, 마케팅비 회수도 끝나고, 순제작비까지 똔똔을 맞추고 나야만 제작자는 가져갈 몫이 생깁니다. 대한민국에서 극장체인을 소유한 메이져 투자배급사는 이런 식으로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대박영화를 내놓은 제작자들도 메이져와의 갑을 관계에서는 꽤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극장에서 내리고 난 후 제작사인 MK픽쳐스는 쇼박스를 고소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습니다. 쇼박스의 정산서에 계상되어있는 마케팅비 액수가 너무나 터무니없었던 거죠. 천하의 강제규, 이은, 심재명 삼각동맹도 결국 쇼박스 앞에서는 칼을 거둡니다. 침 한 번 뱉고, 고소를 접은 겁니다. 아무튼, 요즘 종종 제기되는 '과다 마케팅비 논란'도 쇼박스가 선빵을 질렀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교차상영'도 메가막스와 CGV 두 체인의 골드회원인 제 기억으로는 메가박스 측이 먼저였던 것 같네요(요건 정확한 입증이 필요한 얘깁니다만...^^). 너무 길게 쇼박스 얘기만 한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요즘 한국영화시장의 폐해라고 지적되는 현상들을 대체로 이 회사가 시작했다는 거. 그래서 그들은 시장에서 승리했다는 거. 쇼박스의 지난 행태를 알면 한국영화시장의 문제점이 다 보인다는 거. 이것이 요점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디워>를 선택했다는 거. 쿠궁---


쇼박스가 <디워>를 선택할 때 CJ는 <중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천> 못 보신 분들,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토리가 삑사리’라는 점에서 <디워>와 동일하지만 CG 하나 만큼은(그것도 완전 국산CG) 오히려 <디워> 보다 윗길이라고 보여지는 이 영화가 그토록 처절하게 망하도록 내버려둔 디워빠들의 무관심을 이해할 수 없답니다. 그들은 그 때 뭘 하고 있었을까요?

잠시 옆길로 샜습니다. 죄송.

어쨌든 쇼박스는 <디워>에 약 100억 이내의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사실 관계 확인이 어렵습니다. 기사 마다 60억에서 100억까지 고무줄입니다). 300억 가량의 제작비 중 1/3 혹은 5/1 정도를 투자하고, 국내배급권과 해외배급권을 챙깁니다. 물론 그 액수만 하더라도 웬만한 국내 블록버스터에 전체 투자하는 규모입니다. 쇼박스는 아마 이런 식으로 주판알을 튕겨 보았을 것입니다.

1)2006년 말 <중천>에 맞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수 있는 확실한 블록버스터 확보.
(<디워>와 계약할 당시 연말 개봉을 예상했었다고 합니다. 좀 늦어졌죠) 투자금액 면에서는 <중천>보다 적은 투자로 맞싸울 수 있음. <중천>의 정우성, 김태희가 스타성이 있지만, 심형래의 매체 홍보력도 막강. 그리고 그에 대한 부정/긍정 양면의 강한 호기심이 시장에 존재한다는 점 참조. 순전히 쇼박스의 투자금액 만 고려해보았을 때, 쇼박스는 <디워>를 배급해서 국내 흥행성적 150만 만 거두어도 본전을 회수한다는 판단(극장 매출만으로). 물론 그 렇게 되면 기타 투자자들이나 심형래 감독은 한 푼도 못 벌지만, 쇼박스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매뉴얼에서는 고려할 필요 없는 사항임.


2)계약 전 <디워>의 해외시장 접근 가능성 면밀히 검토. 몇 년 간 심형래 감독이 직접 진행해온 사항들을 검토하고, 쇼박스의 자체 해외마케팅 능력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까지 뚫어낼 수 있는 지 진단. 긍정적 결론 내림. 실제로 쇼박스 해외마케팅팀은 <디워>를 팔 수 있는 시장을 잘 알고 있었고 2006년 칸 영화제를 기점으로 1년 이상 이 부분에 공을 들여왔음. 쇼박스와 계약 이전 간간이 있었던 심 감독의 인터뷰 기사들에 의하면 심 감독은 ‘미국의 메이져’와 배급 계약 추진이 거의 다 된 것처럼 예전의 뻥튀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쇼박스가 프리스타일 같은 회사와 최종 계약을 맺은 것은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었다고 사료됨(애초에 미국의 B무비 시장을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추정됨).


3)이러한 검토 결과를 놓고, 쇼박스는 <디워>의 배급권을 확보하면서부터 국내에서의 적극적인 블록버스터마케팅과 해외 시장에대한 현실주의적 접근이라는 양동작전을 작정했을 것임.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의 1)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시장에서 150만 명만 들어도 쇼박스로서는 본전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사업이란 정말 도박과도 같아서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 국내마케팅에서 위험 요소가 있다면 ‘심 감독의 전적’일 것임. 신지식인 1호로 뜨면서 온갖 블러핑을 일삼았지만 결국 개봉 당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불만이 많아 개봉 2년 후 영화의 80%를 다시 만들어 재개봉까지 해야 했던 심 감독의 전적을 고려할 때 <디워>의 완성도에 대해 쇼박스는 전혀 마음을 놓을 수 없었음(계약 당시 <디워>는 전체 가편집본도 없이 여전히 트레일러 수준의 동영상만 있었음). 더구나 <용가리> 개봉 후 여러 투자자들과 주 개봉관이었던 세종문화회관으로부터 피소되었던 전력 등. 이처럼 심 감독의 전적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요소와 더불어 말 많고 블러핑 심한 그의 캐릭터 역시 부정적인 요소로 판단됨.


이 모든 점을 고려하여 쇼박스는 이 영화를 마케팅 함에 있어 ‘애국주의 -- 신비주의 --, 인간극장’의 컨셉을 최대한 활용하는 블록버스터 전략을 도출해냈을 겁니다. <디워>의 애국주의 마케팅은 개봉을 전후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쇼박스와의 계약체결 직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합니다.

2006년 상반기는 한국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 문제로 열심히 싸우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외제차 타고 조폭영화나 만들어대는 영화인들을 비난하던 네티즌들은 이미 심형래 감독과 <디워>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를 내비치며 ‘충무로는 스크린쿼터 같은 개소리 하지 말고 심형래 발끝에 때 만큼 이라도 따라가 보라’는 식의 댓글질이 관련 게시판 마다 넘치고 넘쳤습니다. 이미 디빠들은 그 때부터 <디워>의 강림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심형래<-->충무로’식의 대립관계는 그 때 이미 예비 디빠들이 유포시키고 있었습니다(당시 게시판들에서 근거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으나 물리적으로는 심한 노가다라서 걍 넘어갑니다. 필요하다면 제시 가능). 2006년 2월. 스크린쿼터축소저지 투쟁이 한창이었고 게시판 마다 영화인들을 성토하는 댓글들이 도배되던 그 때, 마침 <디워>의 배급계약을 체결한 쇼박스는 이런 동향을 보면서 심형래 감독을 한국영화의 새로운 희망으로 띄워내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면서 기분 좋게 웃었을 겁니다.

이때부터 영화 개봉 약 3주 전까지 정확히 1년 간, 쇼박스는 심형래 감독에 대한 철저한 입단속에 들어갑니다. 매체 인터뷰를 최소한으로 제한한겁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심 감독 성격에 수많은 매체에 대고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고, <디워>에 대한 기대감이 일각에서 일고 있는 상황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신비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심 감독은 이 기간 중 드물게 한 어느 인터뷰에서 “쇼박스의 인터뷰 통제가 심해서 입이 근질거려죽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디워>에 대한 해외시장의 반응, 진척된 포스트프로덕션 작업 성과의 일부 노출, 예상 개봉시점을 넘긴 후로는 ‘도대체 언제 개봉하나’를 중점적 기사거리화 시켜 홍보지속 등. 쇼박스는 개봉전까지 철저한 신비주의 마케팅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개봉 약 3주 전.

쇼박스는 드디어 심 감독의 인터뷰 제한을 풀어줍니다. 물론 해야 할 말과 안해야 할 말을 철저히 숙지시켰을 것이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킬 것인지도 사전 숙지시킨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그 동안 참아왔던 말들을 원 없이 내뱉을 수 있도록, 자기 영화의 개봉을 앞둔 영화인 모두가 부러워하는 3대 방송사 메인오락프로그램 싹쓸이 출연일정을 포함한 거의 모든 매체를 대기시켜둔 것도 쇼박스였죠. 네이버 기사 검색 기준으로 8월2일 개봉 전 검색어 ‘<디워>’로 검색한 기사의 수는 1680여 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전인 올해 초. 제가 책임 있는 위치에서 제작에 참여했던, 전작으로 대박을 쳤던 감독이 연출하고 꽤 비중 있는 배우들이 출연했던 어떤 영화는 개봉 전 기사 개수가 290여 건이더군요. 아주 대중적인 스토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 있는 배우와 이름 있는 감독의 작품이었는데도 말이죠(^^;;; 잠시 넋두리였습니다).

방송3사 메인오락프로그램 삭쓸이 출연. 이거 국내 톱스타 두 세 명이 나오는 영화라 해도 쉽지 않은 겁니다. 방송프로그램들 간의 경쟁 때문에라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심 감독은 해냅니다. 현재 오락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는 MC들의 까마득한 선배이며 지난날의 거성이었다는 점이 여기에는 크게 작용합니다. 이경규의 경우에도 심형래 만큼은 해내지 못했습니다. <복면달호> 개봉할 때, 사실 이경규는 방송출연에 일부러 소극적이었지요. 나중엔 많이 출연했지만, <복면달호>가 영화 자체로 꽤 주목을 받을 시점 즈음에 뒷심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대체로 그는 쑥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심 감독은 당당했습니다. 까마득한 후배 MC들 앞에서 꽤 꼰대질까지 섞어가면서, 심형래는 그렇게 약 2,3주 간 한국 오락프로그램들을 평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 본격적인 ‘인간극장 마케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거의 출연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당장 헐리우드를 집어삼킬 것처럼 호기를 부렸고, 그 동안 충무로에서 당한 설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당하다는 듯,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스스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희망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방송출연을 마무리합니다.

그 즈음 본격적으로 네티즌들이 호응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강림한 <디워>는 오랫동안 한국영화의 새로운 희망에 목말라했던 디빠들을 빠르게 결집시킵니다. ‘쇼박스’가 알바를 동원했다거나 <디워>개봉을 즈음하여 연일 상한가를 쳤던 어느 코스닥 상장사(<디워>에 부분투자한 회사라고 함)의 사이버 작전세력이 네티즌 여론을 주도했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마치 ‘음모론’처럼 회자되기도 했는데, 물론 ‘물적 증거’는 없다는 전제하에, 그런 일이야 뭐 당연히 있을 수도 있는 일들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화 개봉할 때 인터넷 알바 동원한다는 게 관행처럼 여겨진 지도 오래됐고, 그런 관행이 영화계의 자정노력으로 없어졌다는 뉴스는 들어본 바 없습니다. 헐리우드 배급사 소니도 몇 년 전 가짜 평론가까지 만들어서 작전을 펼치다가 적발되기도 했는데, 증권가 사이버 게시판에 작전세력이 댓글 알바 동원하는 것도 뭐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처지에, 응당 상상 가능한 정황이지요.


정리합니다.


쇼박스는 1년전, 투입 대비 기대수익을 철저히 따져 본 결과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판단 아래 <디워>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애국주의 -- 신비주의 -- 인간극장’의 순서로 정리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추정의 근거는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그간 <디워>의 홍보마케팅 흐름을 살펴볼 때 정확히 위의 순서로 해당 이슈들이 대중에게 유포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물론 ‘애국주의’ 코드는 쇼박스와의 계약 체결직후 ‘기대감 상승’을 목적으로 제시되었고 이후 개봉시점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된 바 있습니다. 이미 2006년 2월부터 형성된 충무로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디워>에 대한 기대감이 이러한 코드 설정에 중요 참고요소가 되었으리라고 추정됩니다.


문제는, 쇼박스가 이런 식으로 마케팅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따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쇼박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사의 이익을 위해 매우 필연적인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제가 쇼박스 담당자라면 안 그랬을까요? 마케팅을 하는데 위험과 기회, 강점과 약점을 분석해 보면 <디워>에서 무엇을 강조해야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저 이상 적확한 게 없을 겁니다. 저라도 당연히 그렇게 몰고 갔겠지요.


문제는 디빠들입니다.


디빠들은 쇼박스에 낚인 겁니다. 그들은 정확히 쇼박스의 예상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행동해주었으니까요.


개봉 전까지 <디워> 마케팅에서 쇼박스가 어떤 전략을 구사했는가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데, 문제는 개봉 직전부터 개봉 이후까지 벌어진 논란이 아마도 쇼박스의 예상을 많이 뛰어넘어 커다란 노이즈마케팅 효과를 냈던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실제로, 역시 네이버 기사 검색에 의지해 보면, <디워>는 개봉 전 보다 개봉 후 논란들을 통해 훨씬 많은 기사노출을 기록합니다.


개봉직전 ‘심형래 vs 충무로’ 구도를 설정, 유포하여 심 감독의 ‘고난’을 강조하고, 눈물로 호소한 것은 명백한 쇼박스와 심 감독의 의도에 의한 플레이이고, <디워>에 긍정적인 여론은 대부분 이러한 호소가 먹힌 결과였습니다. 그후 논란의 확대과정에서 ‘선빵’의 사실관계들은 한윤형님의 정리가 정확합니다. 의도적 언론플레이에 의해 충무로와 평론가들을 심형래를 핍박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디워빠들 중 래디칼한 무리들이 디워를 혹평하는 네티즌, 감독, 제작자, 기자에게 ‘선제테러’를 가한 것이 ‘사실’입니다. ‘평론가’가 요즘 힘이 있네 없네 그런 얘기는 다른 분들이 많이 하셨으니까 접어두고, 일단 사실관계에 기초해서 볼 때 선빵을 날린 것은 불특정 다수의 디워빠들 맞습니다.


문제는, 심 감독과 쇼박스의 ‘인간극장 마케팅’이 대단히 ‘악의적’이라는데 있습니다. 심 감독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볼 때, 적어도 ‘용가리’부터는 충무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비즈니스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개그맨 출신 아동영화 감독’에 대해 충무로 영화인들이 그를 충분히 대접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무슨 ‘인간극장’적 고난이고 역경이겠습니까? 실제로 그런 식의 왕따 행위가 심 감독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즈니스적인 배타성으로까지 작용해야만 그가 ‘인간극장’적인 역경을 겪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영화 만드는 과정 자체의 고난과 역경은 영화를 만드는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죠.

심 감독은 <용가리>와 <디워>를 진행하면서 충무로의 어느 초일류 감독, 제작자, 배우도 따내지 못할 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낸 사람입니다. 그것도 매번 충무로를 좌지우지하는 일류투자배급사로부터 인정받았던 사람입니다. <용가리>때는 충무로에서 투자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많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용가리>는 그 당시 업계 1위였던 시네마서비스의 주요 투자자였으며, 신흥 메이져로 주목받고 있었던 ‘삼부파이낸스 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고 배급했습니다. 이 회사, 그 당시만 해도 충무로의 신흥재벌이었습니다. 부산의 삼부파이낸스라는 제2금윤권 금융회사를 모 회사로한 이 회사는,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고, <쉬리>를 마지막으로 영화사업을 접은 삼성영상사업단의 핵심브레인들을 스카웃 해서 한국영화판의 새로운 강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한참 키우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 회장 양재혁씨는 <용가리>의 제작자로 크레딧에 올라있습니다(네이버 영화정보 <용가리> 상세정보란 참조). 1999년 7월 10일자 한국경제신문 기사에 의하면, <용가리>는 메인투자자인 삼부파이낸스 엔터테인먼트와 더불어 대한상공회의소까지 직접 나서서 투자유치활동을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충무로 메이져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직접 나서서 투자설명회도 하고 유치까지 이뤄낸 영화가 바로 <용가리>인 겁니다.

<용가리>는 1999년 9월17일, 대중영화사상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용가리> 개봉 초기, 초반 기대감으로 흥행세를 타는 듯하자 이 영화에 투자했던 산은캐피탈의 주가가 1999년 7월 20일 당시 상한가를 기록했다는 머니투데이 기사도 있더군요. 산은캐피탈도 당시 ‘주류 충무로’의 든든한 부분투자회사였습니다(지금도 그렇습니다). 1999년 7월 15일자 한국경제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용가리>는 서울에서 20개, 전국 100여 개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규모면 1999년 당시로는 꽤 큰 규모로 개봉하는 겁니다. 흔히 <용가리>는 충무로로부터 철저히 버려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디워빠들의 댓글 중에는 ‘극장도 <용가리>를 무시해서 시민회관 같은 데서 개봉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웃기는 얘기죠. 물론 시민회관 상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동 영화’들이 흔히 취하는 개봉방식일 뿐입니다. 이미 전국 100개관에서 상영하고, 서울의 ‘시민회관’인 세종문화회관에서도 하는데, 지방 시민회관, 구민회관에서 안 할 이유가 없죠.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면 말이죠.

<디워>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시장점유율 1위의 메이져가, 1년 넘게 투자하고 전략적인 마케팅을 수행하고 해외배급선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어느 모로 봐서 왕따였다는 걸까요?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끌어당긴 돈의 규모와 ,어떤 비즈니스 파트너와 손을 잡았느냐는 점에 있어서 심 감독은 충무로의 어느 누구 보다도 유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충무로를 원망하면서 눈물을 보인 그는, 그래서 뭣 모르는 네티즌들에게 ‘가상의 적’을 심어준 그는, 철저한 거짓으로 대중을 속인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거짓을 유포해서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동정심을 유발하고,

사실이 아닌 거짓을 유포해서
영화계 전체를 자신과 지지자들의 적으로 설정한

심 감독의 악의적 ‘인간극장’ 언론플레이야 말로,
선빵 중의 선빵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왜곡된 인식 따라 가상의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충만했던 디워빠들이 한윤형님이 정리한 바와 정확히 일치하는 순서에 따라 사이버 테러질들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 현상이 노동계급과 산업예비군과 룸펜프롤레타리아로 이루어진
폭주족 집단의 아나키적 반항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요?

그러니까, 디워빠들의 사이버 집단행동이,
역시 리버풀 노동계급과 산업예비군과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문화적 저항이었던 록음악 초창기 문화와 같은 의미라고요?

폭주족을 바라보는 기성세대, 중산층의 혐오가
진중권, 이송희일, 김광수, 허지웅 같은 영화/문화계 기득권 인텔리집단의 <디워> 비판과 같은 맥락이라고요?


폭주족들과 리버풀 록밴드들은
계급적으로 막막한 현실에서 자신들을 정서적으로나마 해방시켜주는
자신들만의 문화에 심취했던 것이지 유포된 허위사실에 속아
허위의식 속에 허우적거리며 테러질을 했던 건 아니라고 봅니다.


진중권, 이송희일, 김광수, 허지웅은
중산층 부모세대이기는커녕
이 광분하는 디워빠 무리에게 아무런 권위도
물리력도 행사할 수 없는,
하찮은 지식인들에 불과하답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그들이 ‘<디워>를 재미있게 본 관객 일반’을 억압하고 모욕했다는 겁니까?


사실관계를 짚어보면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그런 식의 주장을,
이제는 질긴 변명처럼 거듭하고 있는 김규항님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김규항님이 이번에 '나태하고 게을렀다'는 노바리님의 지적이 전적으로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김규항이 "타인의 취향"을 쓸 때, 쇼박스는 "콧노래 부르며 힘을 더 해 간다."는 한윤형님의 지적 역시 적확한 핵심 되겠습니다.


한국영화산업과 영화를 향유하는 문화가 갈수록 개판이 되고 있는 이 때에, 적당하게 포지셔닝하고 적당한 스탠스나 취하는 게 김규항님 같은 이가 할 일은 아니지요. 진정한 적을 찾지 못하면, 항상 엉뚱한 적을 설정하고 공격함으로써 적을 돕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되는 법. 뒤늦게나마, 상황인식에 얼마나 철저하지 못했는지 김규항님이 아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영화인들은, 심형래 감독이 '충무로'를 국민의 적으로 만든 것에 대해 대체로 분노하지만, 쇼박스가 돈 많이 벌어서 올 상반기 동안 내내 잠궈 놓았던 수도꼭지를 열고 투자를 재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환영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할겁니다.


또 참고로, 그렇다면 디워빠류의 대중은 '귀여니'를 개 무시하는 문학평론가들을 왜 테러하지 않는가? '귀여니' 소설이 번역돼서 전 세계 300만 부 정도 팔리면 문학평론가들을 공격하기 시작할텐가? 대단히 궁금합니다.


덧글

  • JOSH 2007/09/06 20:54 # 답글

    한국영화계에 나름대로 애정을 보여주었던 관객층은 몇년에 걸친 스크린쿼터 싸움을 보면서 주류 영화인들에 대해 염증을 느끼게 되었지요.
    그들이 밑에서 영화계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잘 챙겨준 것도 아니고...

    집도 못지키면서 주인을 못 알아보고 짖는 개는 필요없는 법.
    역시... 그 반발의 기반은 충분히 깔려있었다고 생각됩니다.
  • leben 2007/09/06 23:09 # 답글

    JOSH/ 네, 반발의 기반은 항상 있었죠. 탈레반에 꼬투리 잡힌 기독교도 그렇고, 스크린 쿼터에 발목 잡힌 한국 영화계도 그랬죠. 그런데 그 반발이 기형적으로 드러나는 게 문제라는 거죠. 기형에도 기반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 그럴 지도.
  • 오케이씨 2007/09/07 11:49 # 삭제 답글

    말은 참 많이 했는데 볼말은 없군.
  • 버펄로지기 2007/09/07 12:05 # 삭제 답글

    신앙문제로 홈피가 테러당했나보네..... "야외"라고 할때부터 거만하다 싶었지 하하하.....시은엄마 생일선물 어쩔껴? 전화주시구려고구려.

    아..그리고 자네도 영구형님 영화에 대해 관심이 있었구만. 얼마전에 진중권씨가 거의 왕따당하는거 보면서 네티즌들이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진중권씨가 당하는게 시원하기도 했다는.....사실 몇해 전 영광스럽게도(?) 동국대에서 있었던 민노당 정치토론회에서 패널자격으로 진중권씨와 붙었던 매우 불쾌했던 기억이 있었다.

    진중권이라는 인물을 생각하니, 애국애족 주체 반미에 무슨 열등감이라도 있는지 으르렁대던 그에게 "독일에서 칸트물 먹으면 잘난 세계시민인가? 반도에서 신채호 선생 공부해도 세계시민이오"라고 일갈했던 사나운 내 자신이 떠오른다.

    난 진중권씨나 심형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좀 우습다. 얼마전에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디워를 놓고 청계천에서 조립모방에 성공한 어쩌구 저쩌구 했던 젊은 영화감독...내 자신이 경제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그 글을 쓴 사람이 참 순진해 보이더라.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1960-70년대 처음으로 겨우 겨우 고속도로 개통하고 1970년대 처음으로 자동차 만든 나라 아닌가? 그 당시에 나왔던 제미니나 포니..그 차들의 품격을 독일 일본 이태리 미국 등에서 생산된 차들과 비교하는게 가당키나 한가? 포니의 디자인이나 성능이 훨씬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 엔진성능의 품질 떨어지고 좌석이 불편하다고 주장하는게 그렇게도 색다른 주장인가?

    당시 자동차를 수출한다는 것, 그것도 자동차의 고장 미국에 수출한다는 것은 개도국들의 꿈이었고 먼나라 일이었다. 당시 우리보다 잘 나갔던 브라질은 이제서야 겨우 차를 수출하는 수준이고 중국은 요즘에 와서야 차를 수출하고 있다. 대만은 지들 차 수출하려면 아직 멀었다. 포니...스텔라....우린 그 추억의 자동차에 열광했고 지금은 그러한 열광에 힘입어 이곳 미국땅에서 굴러다니는 (새것이든 중고든) 다양한 한국차종들을 보고 있다.

    영화는 이미 산업이다. 네티즌들은 디워를 산업으로 보고 우리도 그런 상품을 수출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행복해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전철이 들어서기전인 시점에 포니를 수출했을 때의 국민적 자부심을. 디워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만 보고 평가하는 것은, 대중영화가 갖는 특성을 예술이라는 범주로 한정시켜 평가하고자 하는 평론가들의 아집이고 독선인 것이다. 물론 난 네티즌들의 황당한 진중권 왕따시키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열광하는 것에 힘껏 동참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 버펄로지기 2007/09/07 12:26 # 삭제 답글

    또 하나. "군중은 우매하다"는 말. "민주주의는 우매하다"고 했던 히틀러의 독선과 크게 틀리지 않다고 보이네. 뒤에 숨어서 욕지거리해대는 네티즌들로 구성된 군중과 항쟁에 참여해 자신들을 불사르는 용기를 가진 군중은 분별해야 하는게 좋을듯...실패한 정치적 경제적 실험은 군중을 계몽하려했던 우매한 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잊지마시게. 그럼안녕. 또 들림세.
  • leben 2007/09/07 21:55 # 답글

    지기/ 위 글들은 물론 디 워나 심형래나 진중권 모두 어느 정도의 비판을 한 건 사실이지만, 결론적으론 자칫하면 파시즘까지도 가능해 보이는 개티즌들의 작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군중은 우매하다는 말을 민주주의는 우매하다는 말로 등치시키려면, 항쟁에 참여해 자신들을 불사르는 용기를 가진 군중을 개티즌들과 등치시켜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거니와 개티즌들이 키보드를 접고 광장으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네.

    문제는 이전의 <광장>이 이제는 <사이버 공간>으로 대치되어 가고 있는데 개티즌들은 자신들의 말 한마디가 지니고 있는 힘을 모른다는 거지.

    광장에서조차 군중심리가 적용되고 오도되는 걸 자주 경험했지만-예를 들어 투쟁의 대상이 독재정권이 아니라 눈 앞의 전경들이 되어버린다든지-넷 상에서는 이런 군중심리가 더 쉽고 강하게 적용되고 오도되는 느낌이랄까?

    이 홈피가 테러 당할 정도로 유명하기나 한가? ㅎㅎ 똥 오줌 못 가리는 사람들에게 그냥 한 마디 한 거지.
  • leben 2007/09/08 01:47 # 답글

    또 하나.
    유럽차에 비해 품질이 한창 떨어진 포니나 제미니를 <품질이 떨어진다>고 평하는 것과, 품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니 <품질 떨어진다고 평하지 말라>는 것과는 별개.

    진중권과 토론하다가 인신 공격을 했다니, 그 토론은 자네가 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ㅎㅎ
  • 성현 2007/09/19 12:43 # 삭제 답글

    필라에 덕분에 잘 다녀왔다. Old Town에서의 그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거의 완벽할 뻔 했는데 아쉽다. 그래도 아내와 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깨달을 수 있던 사건이었다. 다음날 그 사건을 곱씹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찔했다. T-mobie에 complain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이 사람들도 곱씹고 있는지 완전히 씹어버렸다. 어쩌나 생각중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동호장 주인 어르신과 다윗왕님 그리고 저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던 000님 (죄송!! 이름이 기억 안나네요. Drexell Immunology)과 상효네 가정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는 참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머리 커져서 만난 사람들끼리 그렇게 형제애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왠만한 용기 아니고는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진짜 용기있는 분들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날 기회가 되면 저도 조금더 가까와지고 싶네요.
  • leben 2007/09/20 03:10 # 답글

    머리 커져 만난 사람들끼리 나누는 형제애라... 좋은 말이다.
    모두 한 아버지를 둬서 그런 것 아닐까.
    그래도 우린 비교적 머리 작을 때 만나지 않았니.
    어릴 때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머리 커진 형제들만 주변을 가득 채우는구나.

    면역학 전공하는 형 이름은 계1.
    좀더 자세하게 안내하지 못한 나를 용서해주길 바라면서 너 또한 잘 살길 바란다.
  • 성현 2007/09/20 09:04 # 삭제 답글

    그때는 머리가 조금 작았지.
    지금보다 약 1cm쯤..
댓글 입력 영역


What Time Is It Now?